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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육의 언어를 바꿔야 할 때 – 억압 없는 말하기란?

 

 

“조용히 해.”
“틀렸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
“시간 없어, 넘어가자.”

익숙한 교실 속 말들이다.
그 말들은 교사가 학생에게 던지는 단순한 지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권력의 언어, 나아가 억압의 구조가 숨겨져 있다.
말은 공기처럼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그 말이 누구를 향하고, 누구를 침묵시키며, 누구의 가능성을 차단하는가를 묻는 일은 드물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교육의 언어야말로
가장 강력한 억압의 도구이자 해방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는 프레이리 교육철학의 핵심인
‘말하기(speaking)’와 ‘대화(dialogue)’의 정치성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교실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중립적인가?
그리고 우리는 억압 없는 언어를 통해 교육하고 있는가?

 

 

억압 없는 말하기
억압 없는 말하기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의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말이 쓰이는 맥락, 구조, 위계, 방식은
학생이 수업 안에서 자신을 주체로 인식할지, 객체로 위축될지를 결정짓는 요소다.

프레이리는 말한다.

 

“말하는 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침묵 속에선 존재조차 지워진다.”

 

 

그가 보기에,
학생이 말할 수 없고, 질문할 수 없고, 자신의 언어로 생각할 수 없다면
그 교육은 이미 억압된 구조로 굳어져 있다.

반대로, 학생이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며,
그 존재는 스스로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해방적 말하기
해방적 말하기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

 

 

억압적 언어의 특징

1. 일방적이다

교사만이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구조는
학생의 사고를 차단하며, 수업을 ‘정보 수신’ 중심의 활동으로 전락시킨다.

  • “이건 시험에 나와.”
  • “이렇게 외우면 돼.”
  •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이런 말은 학생을 의미 생산자로 보지 않고,
지시를 따르는 객체로 간주
하는 방식이다.

 

2. 판단이 섞여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건 틀렸어’, ‘네가 뭘 알아’, ‘엉뚱한 말 하지 마’ 같은 언어는
학생에게 자기 검열과 침묵의 습관을 심어준다.
결국 말하지 않는 게 낫다는 학습이 축적된다.

 

3. 맥락이 없다

학생의 말은 대체로 수업 흐름을 ‘방해’한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많은 학생의 질문은 자신의 삶과 수업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그 시도를 인정받지 못하면,
학생은 지식이 삶과 무관하다고 느끼게 된다.

 

 

 

해방적 말하기란 무엇인가?

프레이리는 말하기를 단순한 ‘발화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고, 세상과 연결되고, 변화를 일으키는 능동적 행동으로 보았다.
따라서 해방적 말하기는 아래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1. 대화에 기초한다

해방적 언어는 항상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 현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통해 함께 의미를 만들어간다.

 

2. 존재를 소환한다

학생에게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말은
그 자체로 해방의 언어다.
단지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경험과 시각을 수업에 중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3. 침묵을 존중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침묵은 때로 사유의 시간이지만,
억압으로 인한 침묵은 존엄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해방적 말하기는 학생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교실 언어,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 말의 내용을 바꾸기보다, 태도를 바꿔야 한다

  • “왜 그걸 몰라?” → “이 부분은 함께 더 살펴보자.”
  • “조용히 해.” → “지금 네 생각이 궁금해.”
  • “시간 없어, 빨리 해.” → “네 이야기는 잠시 후 다시 듣자.”

같은 상황이라도 말투와 맥락이 달라지면
그 말은 억압에서 배려로 전환될 수 있다.

 

 

✅ 교사가 먼저 질문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질문은 단지 평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대화의 시작이자 의미 탐색의 통로다.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 “이 개념을 너희는 어디에서 경험해봤어?”
  • “우리가 배운 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 “다른 관점도 있을까?”
  • “네 생각은 어떤 거야?”

이런 질문은 교사가 학생의 지적 주체성을 신뢰하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 ‘틀림’을 허용하는 분위기 만들기

틀린 말에 “아니야”라고 반응하는 순간,
학생은 자신의 의견을 꺼내는 데 더 신중해진다.
‘틀린 말’을 ‘다른 시각’으로 대하는 언어 습관이 중요하다.

  • “그건 다른 해석일 수도 있겠네.”
  •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야?”
  • “이 의견에 대해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해?”

이러한 말은 학습 공동체 내 언어의 민주성을 높이는 열쇠가 된다.

 

 

 

억압 없는 언어는 교육 철학의 표현이다

프레이리는 교육을
단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 관계 방식은 언어로 구체화된다.

 

📌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억압적 언어 해방적 언어
평가 중심 관계 중심
침묵 강요 발화 촉진
정답 유도 해석 허용
지시적 질문 중심
위계적 수평적

 

 

우리는 말하는 방식 하나하나가
학생의 자존감, 사고력, 참여 태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말은 권력이다… 하지만 변화도 가능하다

많은 교사가 스스로를 억압적인 언어 사용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실 안에서의 말은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교사의 말은 종종
질책이 되기도 하고, 격려가 되기도 한다.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프레이리는
교육자가 ‘권위’는 가질 수 있지만,
‘권위주의적이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언어의 태도와 방식이다.

 

 

 

말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교육 혁신은 거창한 제도 변화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수십 번 반복되는 교사의 말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

말이 바뀌면 분위기가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면 관계가 바뀌며,
관계가 바뀌면
배움의 방식과 깊이 자체가 달라진다.

‘말하는 존재로서의 학생’을 인정할 때,
그들은 지식을 소비하는 존재를 넘어
세상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프레이리는 말한다.

 

“말은 곧 행동이다.
그 말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를 드러내고,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언어로 교육하고 있는가?
그 언어는 억압인가, 아니면 해방인가?

이제, 교육의 언어부터 다시 써야 할 때다.